꿈속의 나를 만나다
다중우주라는 것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생각하는 주제일 것입니다. 단어는 어려워 보일 수 있으나, 이런 상상을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그 때 뭘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 보셨을 텐데요. 그 때 그것을 했던 내가, 다른 차원에서는 실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다중우주론입니다 – 물리학적이 아니고, 근래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개념적인 이론으로 말입니다 :)
닥터 스트레인지 2는 꿈 속에서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가 악마에 의해서 죽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꿈에서 깬 닥터 스트레인지는 꿈에서 본 소녀를 현실에서도 만나게 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죠. 그러면서 꿈속의 자신의 다른 차원에서 실재하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주 기묘하게도, 죽은,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요.
이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는 다중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능력이 악인에게 넘어갈 경우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 소녀를 돕기 위해 완다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사실은 완다가 아메리카에게 악마를 보낸 장본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크홀드라는 극강의 흑마법서를 얻은 완다 – 전설의 스칼렛 위치가 된 그녀를 막을 방도는 없습니다. 열심히 싸워보지만, 겁을 먹고 차원의 문을 연 아메리카에 의해서 닥터 스트레인지와 아메리카는 다른 차원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스칼렛 위치는 드림워킹이라는 마법을 통해 다른 차원에까지 간섭하여 닥터 스트레인지를 쫓아옵니다. 과연 닥터 스트레인지는 스칼렛 위치를 무너뜨렸을까요? 극강한 마녀로부터 아메리카를 보호할 수 있을까요?
아래 감상평에서는 더 노골적인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가볍지만 보편적인 철학, 그리고 화려함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영화의 장점들과 단점들이 있습니다. 느꼈던 바를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인문학적인 가벼움입니다. 개인적으로 마블 영화를 엄청나게 선호하지는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웅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의 특성상, 가지는 철학이나 감정선이 일차원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작은 단위에서는 나라, 큰 단위에서는 세계를 지키기도 하고, 닥터 스트레인지의 경우에는 전 우주를 구하는 모험을 떠납니다. 당연하게도 스토리 라인은 우주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의 모습들로 구성됩니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까요? 모든 이야기가 복잡하고 심오할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너무 일차원적이고 가벼운 이야기가 질리기도 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2도 이런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말은 항상 뒤에 나오는 법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가장 보편적인 철학을 반복적으로 물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복잡한 얘기더라도, 가장 철학적인 질문은 결국 몇 가지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는 영화 내내 ‘행복하니?’ 하고 묻습니다. 제 주변 사람은 ‘이것조차 너무 일차원적이다’, ‘영화의 연출이나 기술적인 면모로 간접적으로 묻지 못하니 직접적으로 던지는 것이다’하고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영향력이 큰 마블 시리즈 히어로물에서 이렇게나마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것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보면서 저도 계속 생각했거든요. 나는 지금 행복한가?
두 번째는 개연성의 부족입니다. 설정 상 스칼렛 위치는 ‘현실을 뒤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면모를 한 번 보여줍니다. 다른 차원의 영웅과 싸울 때, 아예 가지고 있는 입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죠. 그러나 그 이후에 보여준 싸움들은 실망스럽습니다. 영화이기에 관객에게 보여줄 거리가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빌런이 광선 세례에 힘겨워 하다니요. 설정대로 거의 ‘전능’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그 정도의 개연성이 계속 구축되거나, 아니면 그런 설정을 버려야 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변명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마블 원작 시리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설정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는, 그런 전능한 힘을 항상 사용할 수는 없을 가능성도 크지요. 그러나 영화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해도 아쉬움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모르는 설정이 있다면 부디 아시는 분께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소제목에 써 놓았듯,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화려함입니다. 멀티버스 – 다중우주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생각할 때는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의 이미지로 떠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 처음 다중우주를 넘어가며 보여주는 장면들은 감탄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갔다가, 저 세상에 갔다가, 만화 같은 세상도 보여주고, 모든 것이 분해되었다가… 이 장면을 이미지로 풀어서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전투 장면들은 단연 마블의 장기임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카마르-타지에서 스칼렛 위치를 막을 때 보여주는 단체 전투 장면도 그랬고, 또 다른 자신과 싸울 때 음표를 이용하는 장면도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이기도 했던 장면인데요. 닥터 스트레인지가 드림워킹을 하면서 죽은 자신을 일으킨 부분입니다. “누가 살아있어야 한대?” 이 부분이 다른 영화와의 차별점을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자신, 또다른 자신이 적이 되는 게 아니고, 그것에 빙의하여 싸우러 가는 점이 그렇습니다. 세 번째와 마찬가지로, 시체의 모습으로 싸우러 갈 때 악령을 이용하여 날개처럼 만드는 부분도 – 약간은 그로테스크하지만 – 화려한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어로물이 그렇듯,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들이지만, 몇 가지 클리셰를 비틀어놓은 부분들이 있으니 영화 자체로도 즐기기 좋습니다. 게다가 영화가 가지고 영상적인 화려함을 따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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