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읽으시는데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잊혀진 이웃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의 정체는 피터 파커이다! 미스테리오의 영상이 공개되자, 미스테리오가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파이더맨은 그야말로 공적이 되었습니다. 큰엄마 메이는 물론이고 여자친구 MJ까지, 스파이더맨과 그 주변 인물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그럴 뿐만이 아닙니다. 논란으로 인하여, 피터 파커 본인만이 아니라, MJ를 비롯해, 친구 네드까지도 모두 대학에 불합격 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되돌리고 싶은 피터 파커는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닥터 스트레인지는 기억 삭제의 주문을 알고 있습니다! 피터의 부탁으로 기억 삭제의 마법을 시행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이상합니다.
“알게 돼서 반가웠다, 스파이더맨.”
알고 보니, 이 주문을 외우게 되면, 닥터 스트레인지를 포함, 친구 네드도, 여자친구인 MJ도, 큰엄마 메이도 모두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의 정체를 숨기고 생활하기는 힘들 것을 알기 때문에, 피터는 주문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무려… 5번이나. 그리고 피터의 방해 아닌 방해 때문에, 주문은 아주 큰 재앙을 불러오게 됩니다. 무려 차원이 찢어지는 일을요.
그리고 밖으로 나선 피터는 자신을 아는 듯한 악당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닥터 옥토퍼스부터, 그린 고블린, 리저드맨, 샌드맨, 일렉트로까지.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들은 스파이더맨을 모두 알고 있지만, 이 차원의 ‘피터 파커’의 얼굴은 전혀 모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를 보고, 다른 차원의 ‘피터 파커’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불려 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어찌 되었건, 다시 그들의 차원으로 돌아가면 죽게 될 운명인 악당들. 피터 파커는 그런 그들을 그저 죽게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큰엄마 메이의 말대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따돌리고, 그들을 감옥에서 탈출시킨 후 그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변한다면, 그들이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도 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너무 희망적인 생각이었을까요? 이중인격을 가진 그린 고블린으로 인해서 큰엄마 메이가 죽게 됩니다.
뿔뿔이 흩어진 악당들. 혼자서는 그를 잡기에 벅찹니다. 그런데 다른 차원에서는 악당들만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만이 알고 있는, 그들의 차원에서 온 다른 스파이더맨들도 등장합니다!
결국 그들과의 협동을 통해 모든 악당을 정상으로 되돌리게 된 피터.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은 완전히 붕괴합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스파이더맨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올 수 있게 된 것이죠.
“만약에 모두가 저를 잊으면요?”
피터는 결국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뒤로 하고, 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기를 주문하게 됩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없으면, 그 인연으로 이어진 다른 차원의 존재들도 못 올 것이므로.
결국 이 세계의 모든 이들이 피터를 잊고, 피터는 혼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자친구 MJ도, 친구 네드도, 그리고 그를 돕던 해피와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마저도.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MJ를 바라보면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멀티버스의 독 – 베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제목 그대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집이라고 부를 곳이 없는 스파이더맨의 상황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단서가 존재하는데요. 영화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나열하고, 마지막으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더 나중에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먼저 리뷰하고 스파이더맨을 리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꼈듯, 마블 영화가 공통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얕은 느낌을 줍니다.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마블 영화에서 인문학적인 요소를 찾으려고 하는 게 더 이상할 수도 있다는 걸요. 게다가 이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보다도 더 다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요인으로 이 영화를 평가 절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표현하자면, 너무 직접적인 메시지만이 가득하고, 조금 더 은밀하게 사람들의 내면에 스며들어 영향 줄 수 있는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메시지가 별로 안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 제 생각이 너무 염세적인 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기는 합니다만 – 큰엄마 메이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얘기할 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왜 일차원적으로 돕기만을 권장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사람이 살아 돌아간다면 히틀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과거로 돌아가 이 사람을 만난다면 살릴 것인가요? 물론 윤리적으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쉽사리 이 사람을 살리자고 얘기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윤리적이고 복잡한 딜레마에 있는 문제를 일차원적인 논리만으로 생각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최고 단점입니다.
이런 – 제 기준에서는 굉장히 큰 –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만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특히 이전 시리즈의 스파이더맨을 보신 분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입니다. 바로 첫 번째 시리즈의 토비 맥과이어와 두 번째 시리즈의 앤드류 가필드가 등장한다는 것인데요.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극의 분위기가 반전되는 영향이 있고, 보는 것만으로 예전 시리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영화를 볼 가치를 만들어 줍니다. 더불어서, 결국 여자친구가 죽었던 앤드류 가필드 – 스파이더맨이 MJ를 살리는 장면에서 해소되는 엉킨 감정도, 멀티버스라는 영화의 소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 자체로도, 소재나 액션을 이유로 볼 가치가 충분하지만, 이 영화를 토대로 만들어질 다음 편들이 더욱 기대되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볼 이유가 만들어 집니다. 큰엄마 메이가 돌아가시고, 친구와 여자친구가 모두 자신을 잊어버린 극한의 상황에서, 앞으로 피터 파커는 어떻게 인연을 만들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마음 아프지만, 영화의 팬으로써는 굉장히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또 다른 부분은, 감상평의 초입에서 얘기했던, 희망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단서입니다. 바로 베놈이 이 차원으로 넘어왔다는 것인데요. 원래 존재하지 말아야 할 다른 차원의 존재가 여전히 이 차원에 남아있다는 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지가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베놈이 스파이더맨과 같이 일을 하게 되는 장면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베놈의 존재로 하여금 마법이 해제되어 결국 다른 사람들이 피터 파커를 다시 기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렇게 마법이 해제되면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므로, 걱정되면서도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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