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공유, 정유미, 마동석, 최우식, 안소희, 김의성, 김수안
지금 여기에 좀비가 있다
“수안이가 내일 여기 오겠대. 자기 혼자서라도.”
“애가 혼자 어딜 가.”
펀드매니저를 하고 있는 석우(공유)는 일이 바쁩니다. 일이 얼마나 바쁜지, 딸 수안(김수안)에게 주려고 산 생일선물이 작년에 산 것과 같은 선물이었다는 것조차 생각치 못했습니다. 수안은 큰 실망감에 엄마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석우는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하지만, 수안의 고집에 결국은 동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상합니다. 서울역으로 가는 길, 석우와 수안은 새벽부터 수많은 소방차, 구급차, 및 경찰차가 이동하는 것을 봅니다.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크게 이는 장면도 보여집니다.
어찌 되었던, KTX에 탑승하게 된 석우와 수안. 아주 이른 새벽 5시 반. KTX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타 있습니다. 진희(안소희)와 영국(최우식)을 포함한 야구부 부원들을 비롯하여, 언니 동생 사이인 인길(예수정)과 종길(박명신), 용석(김의성), 성경(정유미)와 상화(마동석)까지. 그리고 출발하기 직전, 웬 소녀(심은경)가 뛰어서 열차에 탑승합니다.
곧이어 KTX는 출발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탄 소녀가 심상치 않습니다. 발작하듯 부들부들 몸을 떨며 신음하던 소녀. 승무원이 그런 소녀를 돕기 위해 조치를 취하려 하는데, 갑자기 이 소녀가 승무원의 목을 물어버립니다. 그리고… 사태가 시작됩니다.
내가 죽을 것인가, 남을 죽일 것인가
주연이 많고 다이나믹하게 흘러가는 영화입니다. 게다가 좀비라는 소재가 등장하는 만큼, 이야기는 사람들을 굉장히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때문에 줄거리를 더 깊이 설명하기보다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좀비가 나타났다. 그리고 딸이 내 곁에 있다.
비록 수안에게 좋은 아빠는 아닐지라도, 석우에게 수안은 굉장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모두 그렇듯이, 아빠가 딸을 아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방식은 조금 다를 지라도 말이죠. 그런데, KTX처럼 비좁은 공간에서 좀비가 나타납니다. 다행히 석우는 수안을 데리고 좀비가 없는 호차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로 뛰어옵니다. 뒤에 가득 좀비들을 몰고서. 당신은 딸의, 가족의 안전을 담보로, 이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줄 것인가요?
“사람이 뛰어오는데 코앞에서 문을 닫아? 돌았냐, 이 새끼야?”
“거 말 조심해요. 당신만 위험했던 거 아니니까.”
석우는 짧은 시간 많은 고민을 하다가 용석의 다그침에 반응한 듯 문을 닫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것이 이기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상황에 처했을 때, 누가 그를 욕할 수 있을까요? 석우의 표정을 보면, 세상 모든 번뇌가 일순간에 들이닥친 듯 당황스러운 표정입니다. 제가 만약 그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해도, 어쩔 줄 몰라 했을 것 같아서 더욱 공감이 갑니다.
게다가 석우는 단순히 홀로 있는 게 아닙니다. 혼자라면 일이 잘못 되어도 어떻게든 도망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석우에게는 어린 수안이 있습니다. 내 뒤에 가족이 있는데, 그 어떤 자그마한 위험이라도 감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비록 부도덕하고, 남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2. 몰려오는 좀비 떼. 그런데 내가 제일 세다.
상화도 석우와 비슷한 입장에 있습니다. 수안처럼 어린 아이는 아니지만, 오히려 더 간절하다면 간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를 밴 성경이 같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상화의 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열차에 같이 탄 사람들 중에서 하필 상화가 가장 힘이 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호실을 이동하면서, 또는 도망칠 때, 상화는 맨 앞에서 길을 뚫거나, 맨 뒤에서 길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성경이 좀 부탁한다. 내가 막을게, 가!”
그렇게 수많은 좀비 떼를 막다가, 결국 손을 물려서 좀비로 변하고 맙니다. 만삭의 아내인 성경을 두고.
당신이 좀비 떼를 막는 입장에서, 당신이 가장 잘 막을 수 있다면, 당신은 막을 것인가요?
사실 이 질문에 단순히 대답하기는 힘듭니다. 상화의 상황에서는 본인이 막지 않았다면 모두가 죽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인 성경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서워서 같이 도망가다가 다 같이 죽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반응일 것 같습니다.
제가 상화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 저였다면 애초에 그 순간까지 살아남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어떤 대답도 쉽게 나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상황이 사람을 몰아갈 뿐.
3. 아… 결국…
부산행에서 나오는 모든 관계의 결말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좀비로 변하면서 마무리됩니다. 수안의 아빠인 석우, 성경의 남편 상화, 영국에게는 진희, 그리고 종길에게는 인길이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영국과 진희, 그리고 종길과 인길입니다.
영국은 좋아하는 진희가 눈 앞에서 좀비에게 물리는 것을 봐야 했고, 결국 진희가 좀비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진희에게 물리고 맙니다. 종길과 인길의 사례는 더 극단적입니다. 집단의 생존을 위해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으로 좀비가 되고 만 인길. 물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종길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는데요. 그와는 대조적으로 집단은 여전히 이기적입니다. 용석의 선동으로 그나마 좀비를 피해 온 생존자들을 또다른 곳으로 내쫓는 집단.
“이렇게 갈 거면서, 왜 그렇게… 등신같이…”
“놀고 있네… 씨.”
“참, 고생 많았다, 언니.”
종길은 문을 열고, 생존자 집단에 좀비를 풀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사람 또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의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길의 행동을 변호할 수는 없지만, 마냥 욕하기도 힘든 이유는, 아마 우리도 그 상황에 처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일 것입니다.
읽고 계시는 당신께서는 어떤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로 변한다면, 소중한 사람이 눈 앞에서 그렇게 변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가요?
위의 두 질문들에서도 그랬지만, 더더욱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전쟁, 사고, 재해를 비롯해서, 이런 사태는 항상 극단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한 번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봐도 재밌고, 이렇게 계속 상황에 대입해보며 보아도 생각할 게 많았던 영화 부산행, 많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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