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집에 누가 살았지?
서연(박신혜)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엄마(김성령)가 아파서 돌아왔는데, 정작 서연은 엄마가 미워 자주 찾아가지는 않습니다. 그저 오래되고 어두운 집에 머무를 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을 잃어버려 무전기처럼 생긴 아주 오래된 집 전화를 충전하게 된 서연. 그런데 전화를 걸기는커녕 받지도 못할 것처럼 생긴 전화기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네 말이 맞아. 엄마 진짜 미친년이야. 나 집에 완전히 갇혔어.”
처음에는 잘못 걸려온 전화인 줄로만 알았던 서연은 별 문제없이 전화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지, 곧 다시 전화가 걸려옵니다.
“선희야, 엄마가 나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 지금 좀 우리 집으로 와 봐. 주소 알지? 보성읍 영천리 4번지.”
“누구세요 자꾸?”
“하, 지랄하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이상합니다. 보성읍 영천리 4번지는 서연의 집입니다. 지금 자기 말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는 것이라니.
그날 밤, 이유 없이 떨어진 액자. 액자를 다시 걸기 위해 못을 박아 넣는데, 못이 벽 너머로 사라져버립니다. 벽 뒤에 공간이 있는 걸 깨달은 서연은 벽을 부수고 계단으로 이어진 지하 공간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영숙의 일기장을 찾게 됩니다.
일기에 써 있는 날짜는 1999년. 찜찜한 기분 때문인지 주변에 영숙을 아는 사람을 찾아봅니다.
딸기 농장을 하는 성호(오정세)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숙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성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희 슈퍼가 있습니다. 선희라는 이름을 들어서 그런지, 선희 슈퍼가 낯설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가 옵니다.
“오영숙씨 사진을 봤어요. 1999년 11월 26일에 찍은 사진이요.”
“오늘 18일인데?”
당연하게도 영숙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 서연은 영숙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읊어줍니다. 바로 전날에 쓴 것이었죠.
그 때부터 선희와 영숙의 기묘한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과연 서연과 영숙의 관계는 어떻게 이어질 것이며, 이것이 서연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요?
망가진 타임 패러독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았을까?
먼저 영화에 대한 감상부터 하고 가자면, 영화는 설정이 모순으로 가득 차며 끝이 나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황당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가치가 너무나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전종서 배우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전종서 배우님의 연쇄살인마 연기는 너무나도 훌륭했습니다. 이런 말이 실례가 될지 모르겠으나, 극중 전종서 배우님의 얼굴에는 묘한 광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더욱 실감납니다.
여러 리뷰들이 서연과 영숙의 밸런스가 너무 무너졌다고 평가하지만, 그런 밸런스에도 불구하고 사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전종서 배우님의 연기가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잘 표현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미 잘 알려진 기성 배우님들, 특히 주연으로 활약하신 박신혜 배우님이나 김성령 배우님, 조연으로 활약하신 오정세 배우님, 이동휘 배우님도 너무나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의 메인 포커스는 오로지 전종서 배우님에게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볼 가치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를 했으므로, 영화에서 실망한 설정적 모순을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타임 패러독스를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본래는 소통할 수 없는 과거와 미래가 전화라는 매체로 연결됩니다.
전화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서 한 것이 미래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서연에게 전달해주려고 1999년 영숙이 땅에 묻어 둔 과자가 서연에게 시간만 지나 그대로 전달되거나, 벽에 찍은 손자국 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심지어는 화재로 죽은 서연의 아버지(박호산)도 다시 살아나고, 그에 따라서 서연의 집도 화사한 곳으로 바뀝니다.
특히 아버지와 관련된 묘사는 곧 영숙이 바꾼 과거가 미래에 곧바로 반영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서연의 엄마가 영숙을 죽이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미래의 영숙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래의 영숙은 버젓이 살아 서연을 노리고 있습니다.
물론 타임 패러독스의 설정상 계속 전화를 주고받고 하며 인물의 마음이 갈대같이 흔들려서 인과관계가 고정되지 않았다고 가정할 수는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까지 반영이 되었으려면, 영숙이 교도소에 가지 않게 된 시점에서 인과를 바꿀 수 있는 시점이 고정되지 않고 무수히 많이 파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계속 환경이 바뀌거나, 집이 바뀌거나 하는 식으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연히도 그런 것까지 고려하지는 않았고, 영화상에서 고려하면 오히려 더 헷갈리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숙이 죽은 결과로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 엄마가 살아있다는 점에서 이미 결과는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쿠키 영상에서 보면 죽은 영숙이 살아나 결국 엄마를 죽이고 서연도 잡아오는 것으로 결말이 나옵니다.
이는 과거의 영숙이 미래의 영숙과 전화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이상합니다. 미래의 영숙이 살아서 과거의 영숙에게서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과거의 영숙이 과거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감옥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영숙의 과거에 자신이 어떻게 했었는지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과거의 영숙이 죽는 결과를 낳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화와 무관하게 그 상황을 넘어갔어야 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영숙이 죽는 결과도 낳지 않았어야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양보해서, 서연 엄마가 전화를 건 시점에서 다시 인과 관계가 바뀌어 그렇다고 판단해봅시다. 그럼 처음 얘기한 바와 같이, 그 때 이미 영숙이 죽을 것은 고정된 결과로 바뀔 것이므로 미래의 영숙이 바로 사라졌어야 합니다.
굉장히 복잡합니다만, 이것이 타임 패러독스가 재밌는 이유고, 잘 만든 타임 패러독스 작품이 별로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로바로 결과값이 반영되는 타임 패러독스는 과거의 값이 변동될 가능성이 생기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라, 한없이 모순적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부분에서 콜은 어떤 일관된 규칙 없이 형성되어 있는 타임 패러독스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쉬운 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불만입니다만, 서연이 너무나도 쉽게 영숙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저였다면, 핸드폰을 찾은 즉시, 욕부터 하는 이상한 여자가 전화하는 옛 전화기를 가져다 버렸을 것입니다.
더불어 그것으로 큰 이익을 가질 수 있음에도, 영숙의 엄마(이엘)와 성호가 영숙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더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 판단했어야 할 것인데… 사실 이 부분은 직접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함부로 얘기하기 힘든 부분이므로, 그저 아쉽다고만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점이 뚜렷한 반면 단점도 뚜렷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전종서 배우님의 스릴 넘치는 연기에 홀딱 반할 수도 있는 영화 ‘콜’, 추천합니다.
추신. 어린 선희 역으로 파친코로 유명한 김민하 배우님이 짤막하게 출연하시는 부분도 지나가는 재미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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