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관계에 변주를 더하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줄거리는 한 가족과 그들의 새로운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소설 작가 김현(류승룡)과 그의 전 부인 미애(오나라), 그리고 그 아들 성경(성유빈)이 그 주인공이 되는 가족입니다.
밥 벌어먹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 김현. 그의 스토리도 참 파란만장합니다. 바람을 피우다 이혼하고, 재혼도 했습니다. 대학교수를 하고 있는데, 7년간 책을 쓰지 못해 이제는 작가보다는 교수로 불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진(무진성)을 만나게 됩니다. 알고 보니 자기 수업의 학생이었던 유진. 게이인 유진은 김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동시에 본인이 쓴 습작을 건네며 김현에게 평가를 부탁합니다. 김현은 일전에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적도 있는 만큼, 유진이 부담스럽습니다. 그가 건넨 습작도 읽지 않으려고 했죠. 그러다가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인 순모(김희원)의 권유로 유진의 습작을 읽게 되고, 순식간에 매료되고 맙니다. 마치 등단하기 전의 본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을까요?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유진. 결국 김현은 유진과 합의 하에 같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편 미애는 전 남편인 김현의 친구, 순모와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일까요? 관계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연애를 하고 있는 미애와 순모. 출장을 핑계로 같이 여행도 가지만, 순모가 전해준 뜻밖의 소식에 미애는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김현이 연애를 하는 것 같다는 추측이었는데요. 순모는 본인이 그런 말을 전했으면서도, 김현의 생각에 빠져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미애가 마땅치 않습니다. 미애는 미애 나름대로 본인과 맞지 않는 부분을 가진 순모에게 불만이 있습니다. 그렇게 순모와 미애의 관계도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아들이라고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탈선하려는 마음을 먹었던 성경. 그러다가 위로가 되어주는 이상한 동네 아줌마 정원(이유영)을 만납니다. 좋게 말하면 오픈 마인드, 나쁘게 말하면 또라이 같은 정원. 처음에는 정원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성경은, 정원과 시간을 함께하며 점점 정원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김현과 미애의 싸움으로 인해 가출을 할 때도 정원의 집으로 갈 만큼 정원에게 큰 안정을 느꼈을까요? 우연하게 정원의 혼잣말 – 오디션 준비를 들은 성경은 그것이 정원의 마음인 것으로 착각하고 정원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짐으로써 성장하는 걸까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재밌는 점은 여기서 나옵니다. 보통의 영화 같았으면 이혼 가정으로 범위를 한정 지었을 텐데요. 이 영화는 거기서 또 다른 관계들을 등장시키면서 변주를 줍니다. 김현의 유진, 미애의 순모, 그리고 성경의 정원까지요. 단순한 관계도 아닙니다. 게이이자 제자인 유진. 전 남편의 친구인 순모. 동네 아줌마 정원. 결코 평범하려 해도 평범할 수 없는 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영화가 진행됩니다.
관계는 만남으로써 시작되고, 헤어짐으로써 종결됩니다. 그리고 보통 헤어짐은 갈등의 끝에 다가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관계도 갈등의 연속입니다.
김현과 미애는 이혼한 사이이지만, 기묘한 기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처음 봤을 때는 김현이 재혼한 줄 몰랐을 정도로, 이상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이혼 가정도 아니고 이런 이상한 관계에 있는 부모님이 성경에게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순모와 연애하는 미애도, 관객이 보기에는 이상하게 다가옵니다. 아무리 전 남편이라고 해도, 아이가 있다고 해도, 이래도 되는 걸까요? 아니나 다를까, 이런 관계는 이후 순모가 알게 되어 큰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이상한 관계에 성경과 순모만 상처받는 것은 아닙니다. 김현의 재혼 부인인 혜진(류현경)에게도 같은 크기만큼의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관계가 드러나면서 미애와 순모가 연애하는 것을 알게 된 김현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모두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흉을 만들고 맙니다.
한편 김현과 유진과의 관계는 별개로 진행됩니다. 유진이 일방적으로 김현을 동경하며 사랑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처음에는 유진에게 거부감과 부담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가장 문제없이 지나가나 싶었던 김현과 유진의 관계는, 김현의 옛 친구 남진(오정세)으로 인해 박살나고 맙니다. 동성애를 하는 유진을 김현과 엮어 언론에 소문을 낸 것이죠. 그리고 김현과 유진의 관계는 결국은 유진이 모든 사실을 밝히고 잠적하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있고, 갈등을 해결하면서 서로 맞춰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김현은 유진을 존중하게 되고, 유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미애는 순모의 성향을 조금 더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은 비록 – 당연하게도 – 정원과 이어지지 못하지만, 가슴 저리게 아프면서도 정원을 놓아줍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 이게 성경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사인데, 그렇게 아픈 가슴으로도 정원을 보내줍니다. 그리고 이후에 정원이 TV에 나오는 것을 보며 웃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관계가 이어지던, 끝이 나던, 그를 치유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관계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관계를 통해 더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망가진 관계를 로맨스로 덮다
관계를 다루면서, 관계로 인해 등장 인물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름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러한 점 때문에 아쉬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원의 캐릭터입니다. 제가 한국 사회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정원의 특성은 영화를 보면서도, ‘왜 저래?’ 하는 생각을 반복할 정도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출 청소년인 성경을 집에 들이고 재우는 것. 처음으로 잔 오빠라며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고지식한가 의심하기도 했는데, 바람직하던 바람직하지 않던, 주변에서 쉽게 보기 힘든 캐릭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이상했습니다.
두 번째는 김현과 순모, 미애, 그리고 혜진이 모두 한 자리에서 싸우는 장면입니다. 아마 구성으로는, 극의 긴장감으로 최고조로 끌어올렸다가 한껏 다른 분위기로 반전시키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전혀 볼 수 없을 장면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는 몰라도, 굳이 이런 연출을 넣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장면이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그랬습니다.
세 번째는 특정 장면이라기 보다는 이 영화의 특성 자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부분에서는 제가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음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저에게는 가족 간의 관계나, 이혼 가정, 불륜, 동성애, 이런 것들이 한없이 무거운 주제였습니다. 이런 주제들을 제 생각보다 가볍게 전개시키는 것은, 처음엔 꽤나 충격적이기 그지없었습니다. 다 본 후 정리하는 지금에 있어서는, ‘이렇게 다룰 수도 있구나,’ 하고 새롭게 느껴지기는 하지만요. 아무래도 한국 사회가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조금 더 오픈하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저처럼 무겁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런 분들에게는 조금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이 영화가 굉장히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 관계에 대해서 건전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은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메시지를 주는 방식이 생소하긴 하지만, 아주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관계를 통한 성장을 비춘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읽고 계시는 당신은 어떤 관계에 있나요? 관계에 어떤 갈등이 있나요? 그것이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면 좋을 것 같나요?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분들께, 추천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시오페아 프리뷰 - 모두 잊어도, 기억할 수 있도록 (0) | 2022.05.29 |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신이 감춘 소녀 (0) | 2022.05.27 |
머니백 - 이렇게 꼬일 수 있나... 돈도, 인생도... (0) | 2022.05.22 |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 잔인하고 유치한 (0) | 2022.05.16 |
닥터 스트레인지 2 : 대혼돈의 멀티버스 - 꿈속의 나를 만나다 (0) | 2022.05.07 |
댓글